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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시 일패동

 

입암(立巖) 민제인(閔齊仁) 선생과 그 후예들

 

입암 민제인(閔齊仁, 1493~1549) 선생은 1493년 3월 13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룡동(호동 경운리)에서 출생하여 17, 18세에 여러 명산을 두루 유람하였고, 성균관에 다니면서 유명한 백마강부(白馬江賦)를 지었다. 1513년 21세에 진사 시험에 합격하고, 28세에 문과 급제하여 한림이 되었다.

 

1522년 4월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으며, 1530년 이조정랑이 되어 월과제술(月課製述)에서 연5회 수석을 하여 품계가 올랐다. 1536년 광주목사. 1538년 제술에 입격하여 말 1필을 하사받았다. 1541년 49세에 평안도 관찰사, 51세에 대사헌, 53세에 호조, 병조판서를 지내고 이어 이조판서가 되었다. 1547년 55세에 의정부 좌찬성이 되었으나 1548년 삭탈관직 되고 공주 반곡(세종시 반곡동)에 유배되었다가 1549년 7월 10일 57세로 졸서(卒逝)하였다.

 

입암공의 저술로는 1543년에 지은 세계 최초의 인성교과서인 『동몽선습』을 비롯하여, 『동국사략』, 『입암집』이 있다.

 

공의 후손으로 드러난 이는 청백리 병조참판 민여임(閔汝任), 가선대부 부사 민여검(閔汝儉), 진주성에서 전사한 민여운(閔汝雲), 영남절도사로 병자호란에 전사한 민영(閔栐), 민광훈의 세 아들 민시중, 민정중과 여양부원군 민유중, 효자 정려를 받은 민평(閔枰)과 민환(閔桓), 독립운동가 민긍호(閔肯鎬), 충정공 민영환(閔泳煥) 등이 저명하다. 숙종비 인현왕후를 비롯하여 명성황후와 순명효황후는 민문의 역사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