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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씨(閔氏)의 유래(由來)는 양설(兩說)이 있는데 일설(一說)은  중국(中國) 민자건(閔子騫) 휘(諱) 손(損)의 자손(子孫)이라 했고, 일설(一說)은 경기도(京畿道) 여주(驪州)에 있는 민굴(閔窟)에서 나왔다는 설(說)이다. 그러나 민굴설(閔窟說)은 태고시대(太古時代) 신화(神話)에나 나오는 신빙성(信憑性)이 없는 말이며 중국(中國)에서 나왔다는 설(說)은 시대적(時代的)으로 보나 문헌상(文獻上) 증거(證據)가 있어 과학적(科學的)이라고 해석(解釋)된다.

 

그 문헌증거(文獻證據)로는 고려 이상국 규보씨(高麗 李相國 奎報氏)가 상시민공식(常侍閔公湜)에게 올린 시(詩)에 "세가전벌열(世家傳閥閱) 계출(系出) 비후현(費候賢)"이라고 하여 세가의 전해온 벌열은 계통이 비후인 민자건(閔子騫)에게서 나왔다고 하였고, 또 학자(學者)들이 우리 민씨(閔氏)를 문장(文章)으로 표시(表示)할 때는 요요 화주(華胄)라 하고(요요 화주(華胄)는 멀리 중국(中國)에서 나온 민자건(閔子騫)의 자손이라는 말) 혹은 문수화벌(汶水華閥)이니 문수후예(汶水後裔)라고 많이 쓰고 있다. 문수(汶水)는 논어(論語)에 민자건(閔子騫)이가 오기재문수지상(吾基在汶水之上)이라 하는 말에 근거한다.

 

또한 일부문헌(一部文獻)에는 「…민씨(閔氏) 계출중국농서(系出中國瀧西) 금지감숙성(今之甘肅省) 난주야(蘭州也) 주경왕시(周敬王時) 서기(西紀)1010년전(年前) 유민손이한무제시(有閔損而漢武帝時) 유민중숙지고기야(有閔仲叔之古記也) 아여흥민씨지시조(我驪興閔氏之始祖) 민칭도이)閔稱道而) 고려상의봉어(高麗尙依奉御)…」란 문헌(文獻)으로 보아 중국(中國)에서 나왔다는 말이 신빙(信憑)할 수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번역)「민씨는 지금의 감숙선 난주인 중국 농서에서 이어 나왔다.

           서기 1010년전에 주나라 경왕때 민손이 있었다는 한무제때 민중숙의 옛기록이 있다.

           우리 여흥민씨의 시조는 민칭도인데 고려 사의봉어 이시다.」

 

우리 시조(始祖)할아버지의 연대(年代)는 고려중엽(高麗中葉)인데, 그 후(後) 자손(子孫)들이 번영하여 고려조(高麗朝)에는 삼대명문(三大名門)으로 일컬어 왔고, 조선왕조(朝鮮王朝)에 와서는 왕비(王妃)가 네 분이 탄생(誕生)하시고 정승(政丞) 판서(判書)등 고관대작(高官大爵)이 즐비하매 사대명문중(四大名門中) 두번 째로 손꼽혔으니 이는 오로지 자손(子孫)들의 노력(努力)과 타고난 운명(運命)이겠지만 선조(先祖)께서 베푸신 음덕의 혜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릇 세상(世上)에는 무원지수(無源之水)와 무근지목(無根之木)은 없는 까닭이다.

 

(주) 민자건은 공자 10제자의 한분으로서 효성이 지극하고 예절에 밝았다고 한다.  따라서 민문을 예가의 종문(禮家의 宗門)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