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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시에서 민씨 가문 두 왕비 인현왕후와 명성황후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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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지키미 작성일20-08-31 15:02 조회1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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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시에서 민씨 가문 두 왕비 인현왕후와 명성황후를 만나다.

프로파일 케이트조 2020. 8. 18. 23:50
https://jjhkate1964.blog.me/222064340626

조선왕조의 왕비 가운데 가장 많은 성씨는 무엇일까? 왕비와 후궁을 합하여 가장 많은 인구가 속한 성씨인 김,이,박씨가 가장 많다. 김,이,박씨를 제외하고는 윤씨, 한씨. 민씨 가문이 그 다음으로 왕비를 많이 배출했다.

윤씨 성을 가진 유명한 왕비로는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윤씨와 중종의 어머니인 정현왕후가 있다. 한씨 성의 왕비로는 태종의 모후인 신의왕후, 성종의 모후인 인수대비가 있다.

민씨 가문은 왕비를 4명 배출하였다. 순종황제의 정비인 순명황후를 빼고 나머지 3명의 민씨 성의 왕후는 조선의 왕비 가운데 지명도가 상당히 높다.

첫번째 민씨 가문 왕비는 태종의 정비이며 세종의 모후인 원경왕후이다. 민무질, 민무구 형제가 태종의 외척 척결의 대상으로 태종에게 죽임을 당하자 원경왕후와 태종의 관계는 악화되었지만 태종이 즉위하는데 가장 큰 조력자는 원경왕후 민씨였다.

나머지 2분의 민씨 성의 왕비는 더욱 유명하다. 바로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와 고종의 정비인 명성 황후이다. 17세기와 19세기의 세월의 간격이 있지만 2명의 왕비의 가문은 사실 아주 가깝다. 인현왕후와 명성황후는 둘다 여흥 민씨 가문 출신이다. 여흥은 경기도 여주시의 옛이름이다. 인현왕후의 부친인 민유중이 명성황후의 6대조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장희빈이 중전이 되고 인현왕후는 쫒겨나 안국동에서 살았다. 그 처소의 이름이 감고당이었다. 현재 감고당은 안국동에서 여주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터로 이전하였다. 인현왕후의 감고당이 여주로 이전 함에 따라 명성황후 기념관 일대는 더욱 방문객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장희빈의 질투까지도 포용하는 후덕한 왕비로 평가되는 인현왕후에 대한 후세 평판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반면 명성황후는 조선의 왕비 가운데 호불호가 가장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래 전 명성황후 뮤지컬을 인상적으로 본 뒤로 명성황후에 대한 관심은 줄곧 마음 속에 있었다. 황후에 대한 비난의 글과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웬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를 접하면 마음이 편했다.

여주의 명성황후 생가를 한바퀴 돌아보고 명성황후 기념관을 들어선다. 기념관 입구에 명성황후의 큰 초상화가 있다. 생전 사진 찍는 것을 기피하여 사진이 한 장도 없기에 진짜 모습인지 확인할 길 없는 모습이다. 기념관을 돌아 나오는 마지막 코너에 전시된 황후를 찌른 대검은 늘 섬뜩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느낌 탓이었을까? 지금까지도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고 싶어지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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