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기타자료실

입암공의 조부 민수(閔粹)의 간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홈지키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2-22 12:15 조회116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閔粹公(민수공)의 자료

 

詩文(시문)

1) 次韻

山牟半熟野苗靑(산 보리 반쯤 익고 들에 난 싹은 푸른데)

節序駸駸斗指丁(계절은 점점 두병(斗柄)이 정방을 가리키네)

雙鳳聯翩㘅帝詔(두 마리 봉황 날개를 나란히 하여 황제 조서 물어와)

十行新播暢皇靈(열줄 글 새로 전파되니 천자의 신령 펼쳐지네)

 

慣吟風月憐知己(풍월을 읊조리며 벗을 가련하게 여기고)

醉撫乾坤任寓形(술 취하여 건곤을 어루만지며 형체를 내맡기네)

竣事歸來須努力(일 끝내고 돌아오려면 노력은 필요하니)

莫將身世付鴻冥(신세를 홍명(鴻冥)에 부치지 말게)

이 시는 皇華集卷之六에 실려 있다. 민수공이 세조 10년에 이조좌랑으로 명나라 사신의 접반사가 되어, 明使(명사) 金湜(김식)의 시에 次韻(차운)한 시이다.

 

立後(입후) 문제

민수공의 고조할아버지는 원경왕후의 종조부인 대제학을 지낸 민유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전농시소경을 지낸 민지생이며, 할아버지는 함길도관찰사, 전라도도관찰사, 형조참판, 개성부유수를 지낸 민심언이고, 아버지는 사헌부집의, 홍주목사를 지낸 민충원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원종공신인 공신의 집안으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민수공을 이어 아들 민구손과 손자 민제인이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3대가 연이어 과거에 급제를 하였다. 민제인은 좌찬성에까지 올랐다. 민수공의 후손으로는 인현왕후, 명성황후, 순명효황후가 나왔고, 민제인, 민광훈, 민시중, 민정중, 민유중, 민진후, 민진원, 민백상 등이 배출되고, 조선말 소위 민씨세도에까지 번영을 누리면서 여흥 민씨를 대표하는 집안이 되었다.

민수공은 세조 2년에 생원시에 장원급제를 하고, 세조 5년 식년문과에서 준장원을 차지한 수재로, 세조가 아끼며 육성했던 문사였다. 세조 5년에는 사가독서를 받았다. 한림을 거쳐 이조좌랑, 이조정랑을 지낸 장래가 촉망되던 인재였다. 민수공은 왕의 옆에서 왕의 하달문인 교서를 작성하는 지제교를 오랫동안 지냈고, 세조 10년에는 이조좌랑으로 명나라 사신의 접반사가 되어 明使(명사) 金湜(김식)의 시에 次韻(차운)한 시가 皇華集(황화집)에 전할 정도로 詩文(시문)에도 능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위 파일을 다운로드하면 좀더 자세한 역사적인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