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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4대명문 家門 (대제학과 여흥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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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지키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7-17 15:34 조회4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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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학과 여흥민씨

                                                                     민 명 기  

 

조선시대 영의정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오늘날 국무총리와 같은 지위다.

우의정 좌의정과 함께 삼정승이라 한다. 

500년 조선역사에 삼정승이 모두 366명이고 그 가운데 영의정이 158명이었다.

3대정승(父.子.孫)을 배출한 명문가로 영의정 서종태,좌의정 서명균, 영의정 서지수를 배출한 대구서씨가 있고, 좌정승 심덕부,영의정 심온, 영의정 심회를 배출한 청송심씨가 있다.

동래정씨는 좌의정 정유길 좌의정 정창연, 영의정 정태화가 3대정승이며, 청풍김씨는 김구(金構)가 우의정,

김재로가 영의정, 김치인이 영의정으로 3대정승 가문을 이루었다.

대제학은 오늘날 교육부장관과 같은 지위로 과거에 급제하고 호당(湖堂) 출신이면서 최고의 성리학자이고 학문과 도덕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

조선의 대제학은 모두 135명이다.

영의정이나 대제학을 배출한 가문을 소위 명문가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3대(代) 대제학을 배출한 광산김씨, 전주이씨,연안이씨, 대구서씨 가문을 명문가 중의 명문가로 뽑고 있다.

광산김씨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손자 김익희가 대제학이 되었고, 광성부원군 총영사 김만기(金萬基,1633~1687)는 숙종비 인경황후의 아버지이며 사계 김장생의 증손자로 아우 김만중과 나란히 형제 대제학이 되었으며, 김만기 아들 좌참찬 김진규도 대제학, 손자 영의정 김양택도 대제학에 오르고, 뒷날에 김상현,김영수도 대제학이되어 광산김씨 문중에서 모두 7명의 대제학을 배출하니 명문중의 명문가가 되었다.

그밖의 3대 대제학 가문으로 전주이씨에서 판서 이민서가 대제학이되고 그아들 좌의정 이관명,손자 우의정 이휘지가 대제학이 되었다.

연안이씨 가문에서는 좌의정 이정귀(李廷龜)가 대제학에 오르고 뒤를이어 아들 판서 이명한,손자판서 

이일상이 3대 대제학이 되었다.

대구서씨 가문에서는 대사헌 서유신이 대제학에 오르고 아들판서 서영보,손자판서 서기순이 대제학에올라 

3대 대제학 가문이 되었다.

 

여흥민씨는 휘 응협(閔應協,1597~1663)의 아들 휘 희(閔熙)가 좌의정, 휘 점(閔點)이 좌찬성으로 대제학,

휘 암(閔黯)이 우의정으로 형제가 대제학에 올랐으며, 여은부원군 민태호(閔台鎬,1834~1884)는 순명효황후의 아버지로 총융사 좌찬성을 역임하며 대제학에 올랐다.

여흥민씨는 조선시대에 휘 점, 휘 암, 휘 태호 3명의 대제학을 배출하였으나, 고려시대에는 더 많은 대제학을 배출하였다. 즉 4세 문경공 민영모(閔令謨)와 그아들 정의공 민공규(閔公珪)가 부자(父子)간에 태학사(太學士대제학)를 역임하였고, 8세 문인공 민지(閔漬)와 아들 충렬공 민상정(閔祥正)이 대제학이었고, 9세 문순공 민적(閔頔)과 큰아들 문온공 민사평(閔思平), 작은아들 사암공 민유(閔愉)가 3부자대제학(3父子大提學)이었으며, 11세 휘 중리(閔中理)가 대제학이었으며,원경황후의 아버지 여흥부원군 민제(閔霽) 또 한 대제학 이었으니 고려시대에 여흥민씨 대제학이 무려 9명이나 된다.

그러므로 여흥민씨가문을 고려 4대 명문가라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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